우연히 유튜브에서 90년대 마소의 엑셀 광고를 보니, 옛날 군대시절 생각도 나고, 요즘 AI를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겹쳐 보인다.
지금은 당연한 도구로 생각하고 쓰는 엑셀이지만,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은행 창구에선 주판 빨리 놓고 현금을 손으로 세는 게 대단한 기술이었고 엑셀은 전문직이나 비싼 돈 주고 쓰는 도구였다. (엑셀 팩키지 하나가 U$300이 넘던 시절)
내가 군대 시절 근무했던 곳은 모 사단 사령부 내 관리부-경리과. 사단 내 모든 자금을 관리, 집행하던 곳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장교와 병들은 상고-은행원 출신들로 구성. 내가 경영학과 출신이라 경리/회계에 대해 뭔가 잘 알거라고 오해하고 (잘못) 뽑음. 당연히 주판은 국민학교 때 잠깐 해봤던 기억만 있으니, 나에게 커다란 계산기를 던져주고 그걸로 계산해서 장부에 기장하란다. (초짜라 당연히 주판보다 느렸으나 나중엔 비슷한 속도로 숙달됨.)
매월 급여일이 다가오면 경리과는 난리가 난다. 커다란 흰색 전지를 깔고 그 위에 계정별로 세로 줄 긋고, 하급 부대별로 가로 줄 긋고, 미리 계산해둔 급여일에 나갈 금액들을 깨알같이 손으로 기입한다. 그 후엔 전직 은행원들이 붙어서 가로 합과 세로 합을 주판으로 좌악 더하며 계산을 하는데, 드륵륵, 착착착하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몇 명이 달라붙어서 하루 이틀 밤을 샐 정도로 일이 많았던 것같다. 그래서 다른 부서 사람들이 안스럽게 볼 정도. (난 옆에서 계산기 쪼물닥 거리며 구사리 먹고 있었음)
어느 날 사무실에 귀하게 모셔져있는 (거의 아무도 쓰지 않는/ 쓸줄 모르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때는 286XT/AT만 해도 귀한 최첨단 장비였고, 에어콘 나오는 전산실엔 무려 386 컴퓨터가 돌고 있던 시절이었지. Gold Star (금성, 지금의 LG전자)에서 만든 컴퓨터였었는 지, 기본 소프트웨어로 딸려 나온 것들 중에 '하나 스프레드시트'라는 게 있었다. 설명서가 있길래 읽어보니 깜놀. 아니, 우리가 손으로 한땀 한땀 그리고 있던 표를 이게 대신 그려주고, 숫자를 입력하면 계산을 바로 해준다고? 그리고 옆에 연결되어 있는 도트 프린터로 종이 출력까지 된다고? 이게 말이 되냐? 그러면 이 불쌍한(?) 은행원 출신 방위병들은 뭐하러 밤새 주판으로 노가다를 해왔단 말이냐?
합리적으로 뭔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옛날에 컴퓨터 또닥거리던 기억을 되살려 직접 만들어봤다. 근데 어라? 되네? 근데 왜 아무도 안하고 있던거지? 안하고 있던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을 뿐이고, 기존의 자기들 방식(주판)에 사고가 굳어진 관계로, 다른 더 나은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던 것같다. 그리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농업적 근면성이 인정을 받고, 여러 명이 밤새 일하는 게 미덕인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은행원 출신 방위병들은 소집해제(제대)를 하고, 이제 계산기나 두드리는 나만 남아 급여일 정산 처리를 하게 되었고, 주변에선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몇 명이 밤새 처리하던 걸 혼자 하려면 며칠 밤새는 건 기본이겠구나 싶었겠지. 나 역시 그에 호응해 정말 죽겠다는 표정으로 야근 신청을 하고, 밤에 사무실에 남아 작업은 1시간 이내로 다 끝내놓고, 밤새 책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야식으로 컵라면도 먹으며 잘 놀다, 새벽에 다 죽어가는 모습을 연기하며 퇴근하곤 했다. 표를 만든 후 약간의 매크로 비슷하게 자동화를 해놓으니, 그냥 기계적으로 숫자만 때려 넣으면 알아서 전체 총괄표가 만들어지더라.
결국 한참 후에 이 비밀을 슬슬 공개하며 후임에게도 전수해주고, 경리과 전체에 보급시켜 버렸다. 그랬더니 전체 인원이 반 이하로 줄고 더 이상 은행원 출신을 굳이 뽑지 않더만.
나중엔 로터스, 쿼트로 같은 것도 써봤는데 결국 윈도우 시대가 되면서 스프레드시트 쪽은 엑셀이 다 평정했다. 지금은 AI 때문에 엑셀조차 쓰네 마네 하는 시절이 되었는데, 과거 주판에서 계산기를 거쳐 하나 스프레드시트까지 경험한 입장에선, 지금이 딱 그 시절같다.
AI 라는 (스프레드시트라는) 도구가 옆에 있어도,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또는 하던 게 편해서 그냥 기존 레가시 시스템 (주판)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다수고, 누구는 AI로 기존 업무 자동화시켜 놓고 다른 일 하고있다. 기술과 tool은 계속 발전하고 달라져도, 그걸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같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라는 썰도 있듯이, 변화를 바란다면 일단 기존에 하던 일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굳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이젠 일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일과 프로세스를 줄이고 없애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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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90년대 마소의 엑셀 광고를 보니, 옛날 군대시절 생각도 나고, 요즘 AI를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겹쳐 보인다.
지금은 당연한 도구로 생각하고 쓰는 엑셀이지만,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은행 창구에선 주판 빨리 놓고 현금을 손으로 세는 게 대단한 기술이었고 엑셀은 전문직이나 비싼 돈 주고 쓰는 도구였다. (엑셀 팩키지 하나가 U$300이 넘던 시절)
내가 군대 시절 근무했던 곳은 모 사단 사령부 내 관리부-경리과. 사단 내 모든 자금을 관리, 집행하던 곳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장교와 병들은 상고-은행원 출신들로 구성. 내가 경영학과 출신이라 경리/회계에 대해 뭔가 잘 알거라고 오해하고 (잘못) 뽑음. 당연히 주판은 국민학교 때 잠깐 해봤던 기억만 있으니, 나에게 커다란 계산기를 던져주고 그걸로 계산해서 장부에 기장하란다. (초짜라 당연히 주판보다 느렸으나 나중엔 비슷한 속도로 숙달됨.)
매월 급여일이 다가오면 경리과는 난리가 난다. 커다란 흰색 전지를 깔고 그 위에 계정별로 세로 줄 긋고, 하급 부대별로 가로 줄 긋고, 미리 계산해둔 급여일에 나갈 금액들을 깨알같이 손으로 기입한다. 그 후엔 전직 은행원들이 붙어서 가로 합과 세로 합을 주판으로 좌악 더하며 계산을 하는데, 드륵륵, 착착착하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몇 명이 달라붙어서 하루 이틀 밤을 샐 정도로 일이 많았던 것같다. 그래서 다른 부서 사람들이 안스럽게 볼 정도. (난 옆에서 계산기 쪼물닥 거리며 구사리 먹고 있었음)
어느 날 사무실에 귀하게 모셔져있는 (거의 아무도 쓰지 않는/ 쓸줄 모르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때는 286XT/AT만 해도 귀한 최첨단 장비였고, 에어콘 나오는 전산실엔 무려 386 컴퓨터가 돌고 있던 시절이었지. Gold Star (금성, 지금의 LG전자)에서 만든 컴퓨터였었는 지, 기본 소프트웨어로 딸려 나온 것들 중에 '하나 스프레드시트'라는 게 있었다. 설명서가 있길래 읽어보니 깜놀. 아니, 우리가 손으로 한땀 한땀 그리고 있던 표를 이게 대신 그려주고, 숫자를 입력하면 계산을 바로 해준다고? 그리고 옆에 연결되어 있는 도트 프린터로 종이 출력까지 된다고? 이게 말이 되냐? 그러면 이 불쌍한(?) 은행원 출신 방위병들은 뭐하러 밤새 주판으로 노가다를 해왔단 말이냐?
합리적으로 뭔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옛날에 컴퓨터 또닥거리던 기억을 되살려 직접 만들어봤다. 근데 어라? 되네? 근데 왜 아무도 안하고 있던거지? 안하고 있던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을 뿐이고, 기존의 자기들 방식(주판)에 사고가 굳어진 관계로, 다른 더 나은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던 것같다. 그리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농업적 근면성이 인정을 받고, 여러 명이 밤새 일하는 게 미덕인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은행원 출신 방위병들은 소집해제(제대)를 하고, 이제 계산기나 두드리는 나만 남아 급여일 정산 처리를 하게 되었고, 주변에선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몇 명이 밤새 처리하던 걸 혼자 하려면 며칠 밤새는 건 기본이겠구나 싶었겠지. 나 역시 그에 호응해 정말 죽겠다는 표정으로 야근 신청을 하고, 밤에 사무실에 남아 작업은 1시간 이내로 다 끝내놓고, 밤새 책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야식으로 컵라면도 먹으며 잘 놀다, 새벽에 다 죽어가는 모습을 연기하며 퇴근하곤 했다. 표를 만든 후 약간의 매크로 비슷하게 자동화를 해놓으니, 그냥 기계적으로 숫자만 때려 넣으면 알아서 전체 총괄표가 만들어지더라.
결국 한참 후에 이 비밀을 슬슬 공개하며 후임에게도 전수해주고, 경리과 전체에 보급시켜 버렸다. 그랬더니 전체 인원이 반 이하로 줄고 더 이상 은행원 출신을 굳이 뽑지 않더만.
나중엔 로터스, 쿼트로 같은 것도 써봤는데 결국 윈도우 시대가 되면서 스프레드시트 쪽은 엑셀이 다 평정했다. 지금은 AI 때문에 엑셀조차 쓰네 마네 하는 시절이 되었는데, 과거 주판에서 계산기를 거쳐 하나 스프레드시트까지 경험한 입장에선, 지금이 딱 그 시절같다.
AI 라는 (스프레드시트라는) 도구가 옆에 있어도,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또는 하던 게 편해서 그냥 기존 레가시 시스템 (주판)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다수고, 누구는 AI로 기존 업무 자동화시켜 놓고 다른 일 하고있다. 기술과 tool은 계속 발전하고 달라져도, 그걸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같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라는 썰도 있듯이, 변화를 바란다면 일단 기존에 하던 일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굳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이젠 일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일과 프로세스를 줄이고 없애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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